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118 다해 연중 제1주간 금요일(마음의 평화? 참 평화와 안식은 오직 믿음에 기인한 순종으로부터!)
2019-01-17 22:46:06
박윤흡 조회수 816

  우리들의 안식처이자 피난처이신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세례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여쭈어 봅니다. ‘성당에 왜 나오시게 되셨어요?’

80%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라고 대답하십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안식처가 되실 것’이란 믿음을 전제로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감상적인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1독서에선 이렇게 전하죠.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히브 4,1)

안식처에 들어가는데 ‘조건이 있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쭉 묵상을 하다보니, 조건이 아래 등장합니다.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5,11)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느님의 포근한 안식처는 불순종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으로 입성할 수 있다고 히브리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일회적인, 일순간적인 내 마음에 어려움이나 상황으로부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안식’이 아니라,

일상의 삶 안에서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참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중풍병자의 능동적인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들것에 실려내려가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는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풍병자가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순종했기에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질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겠는가?’

 

  ‘선하신 하느님께서 선한 길로 나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요청됩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주님께서 나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청하며

평화가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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