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207 다해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영적 개안)
2018-12-06 21:28:55
박윤흡

  지금이 무더운 여름철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내 앞에 물이 반쯤 담긴 유리잔이 있습니다.

갈증이 지속되는 한여름에 이 유리잔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물이 반이나 있네!’ 혹은 ‘물이 반밖에 없어.’ 아마도 이 두 가지 중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것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식과 받아들임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결정됩니다.

천국 혹은 지옥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죠.

 

‘여기는 신호가 길어!’, ‘아니야, 이정도면 짧은 편이지.’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는 것일까?’ ‘아니야, 나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

‘남의 자식은 저런데 내 자식은 왜그럴까?’, ‘아니야, 내 아들딸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나의 피붙이야.’

 

  감사함과 불평은 한끝차이지만 신기하게도 순간의 판단과 감정이 우리 자신을 형성해간다는 것은 무서운 사실입니다.

‘사람과 상황, 사건과 그밖에 모든 것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는 그렇게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눈이 먼 존재가 눈을 뜨게 된다.’는 주제로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 빈정대는 자가 사라질 것이다.”(이사 29,19-20)

 

  언제 그렇게 된다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오셨을 때’, ‘하느님을 만났을 때’

불평과 빈정은 사라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차오른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오늘 복음에서 2,000년 전 예수님을 직접 만난 눈 먼 소경은 ‘눈을 뜨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뜨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영성적으로 보았을 때 하느님을 보지 못하여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찼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이제는 ‘하느님을 보고’ 감사와 찬미의 영적인 눈을 뜬 것이라고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향하여 영적 ‘개안’(開眼)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틔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예수님을 향한 충직한 믿음 안에서 실현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분께 믿음을 두고 영적 눈을 틔워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더불어 2018년도 수원 교구에서 부제품과 사제품에 오른 모든 성직자들을 위하여

사제들의 어머니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 봉헌해 주시길 두 손 모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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