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019 나해 연중 제28주간 금요일(우리는 하느님의 귀한 존재입니다.)
2018-10-19 00:32:19
박윤흡 조회수 742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루카 12,7)

 

  조금은 두렵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나도 모르는 내 머리칼 수를 하느님께서 아신다니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죠.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니

하느님의 힘은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이 분명하다는 것을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칼까지 알고 계신다는데 우리 삶의 현장을 모르실까요?

누가 누구를 미워하네, 누가 누구를 좋아하네, ‘저 사람이 글쎄...’하면서 뒷말했던 것도 다 알고 계시고,

남몰래 악행을 저질렀던 일도, 반면 선행을 했던 것도 분명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마태 6,18)이라고도 말씀하시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두려워요.

요즘 ‘신흥종교’라고 하는 무리들, 이를 테면 ‘신천지’라던지, ‘여호와의 증인’라던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로 개명한 ‘몰몬교’라던지, 과거 성행했던 ‘JMS교’ 라던지..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의 두려움’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을 부각시켜서 돈을 많이 내게 하고

소위 순교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옥 간다', '그러면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 라면서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자꾸만 건드는 것이죠.

하느님이 ‘지켜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두려울 수 있을 법도 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표현에는 ‘경외’라는 말이 있죠. ‘경외’는 ‘하느님을 두려워함’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워한다는 건 ‘무서워서 두려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죄송스런 마음에 두려워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여기엔 전제가 있어요. ‘그래도 그분은 나를 사랑하실거야.’라는 믿음이죠.

부모님이 두려운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에 내가 보답해드리지 못해서

괜스레 얼굴 뵙기가 죄송스런 그런 두려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은요, ‘요놈이 어떻게 하나’하시면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7)

말 그대로, 하느님께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자녀’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선 정체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토록 십자가에 못박혀 아파하시는데 우리는 그분께 무엇을 드렸습니까?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시는 그분께 무엇을 드렸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가 예수님의 사랑에 나의 보답을 드릴 수 있는 기회의 연속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분을 위하여 나는 오늘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곰곰이 묵상해보고,

길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라도 주을 수 있는 겸손된 마음을 청하는 오늘 거룩한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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