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008 나해 연중 제27주간 월요일(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
2018-10-07 23:25:58
박윤흡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왜곡되는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아닌, 다른 기쁜 소식으로 내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겠지요.

다마스커스에서 하느님 체험을 한 사도 바오로는 ‘복음’에 대한 굉장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독서 말씀에 따르면 그에 대한 식별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갈라 1,11-12)

 

물음이 생기죠.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의 비위만을 맞추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삶은 무엇인가?’

 

  오늘 복음은 그에 대한 실마리를 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레위인도, 사제도 초주검이 되어 고통중에 있는 사람을 지나칩니다.

하지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품에 안아줍니다.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관 주인에게 ‘저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시면서 물음을 던지십니다.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그러자 율법 교사가 대답합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루카 10,37)

 

  예수님께서 새로주신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는 하느님의 품성인 ‘자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오로 사도의 말씀따라 ‘하느님 뜻에 따른다’는 것은

이처럼 자비로운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결코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고리타분하다거나 탁상공론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따뜻한 눈을 뜨고 본다면 정말로 많습니다.

그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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