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912 나해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2018-09-12 00:21:04
박윤흡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신학교 입학 면접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자네는 왜 신학교에 오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에 ‘행복해지고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었어요.

그리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교우분들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갈망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

 

  어쩌면 행복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유로운 금전, 뛰어난 학벌, 품위있는 삶의 자리, 부족함이 없는 삶, 치열하지 않은 상황,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 등.. 세속적인 행복은 이런 것들 이겠지요.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새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행복을 선언하시면서 거룩해진다는 의미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 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행복 안에서 우리는 스승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날마다 자신의 삶에서 스승님의 얼굴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또는 ‘복된’이라는 말은 ‘거룩한’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이들은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참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2018, 63-64항-

 

  교황님의 분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행복의 비전은 ‘거룩함’이라고 합니다.

거룩해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한 분 스승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분의 모습을 내 삶에서 구현하는 삶이라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목을 집중해서 봐야 할 부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셨는가?’하는 부분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방법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가난하셨고, 굶주린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굶주리셨어요.

그리고 울며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당신 또한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내리는 비를 막아줄 수는 없지만, 비가 오면 항상 함께 맞아줄게.’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불행한 상태를 나 또한 함께 체험하면서 곁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곧, ‘공감’입니다.

 

‘공감.’

 

  누구나 다 각자의 어려움과 갈등, 시련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어쩌면 버티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든 현대사회의 우리들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의 고통에 머물고 계시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공감'이죠!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모른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계시면서

누구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우리의 상처를 위로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모상’다운 우리의 몫은, 우리 또한 하느님의 마음으로 내 이웃을 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질적 가난, 영적 가난, 물질적 굶주림, 영적 굶주림 그리고 마음의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옆에 있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참행복을 내 삶에 담을 수 있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고 계십니다.

실질적으로 내 것만 챙기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행했을 때 내 양심에 찔리는 이유는,

오늘 예수님의 ‘참행복 선언’이 불변의 진리임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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