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712 나해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2018-07-11 22:23:51
박윤흡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해관계와 더불어 쌍방적인 내어줌의 자세가 아니라

그저 내어 주라는 가르침은 하느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 묵상을 해보게 됩니다.

 

왜 굳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라고 가르치시겠습니까?

왜 굳이 죽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시려하겠습니까?

왜 굳이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들린 이들로 하여금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귀를 쫓아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거저 주어라.’하시는 이 가르침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선포하는 듯이 다가옵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이런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11장 1-7절은 ‘배신당한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고,

8-9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주제는 성경에 ‘파란색 제목’으로 붙은 텍스트의 소제목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 내 백성은 나를 배반하려고만 한다.”(호세 11,1-7)

 

  하느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추상적인 존재로 상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인격적인 하느님’이시기 때문이죠.

그렇게 봤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을 배신하는 이들에게 느꼈을 상실감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사랑했더니 점점 멀어지고, 불륜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은혜를 갚기는커녕 모른채 하고 심지어 욕되게 하는 행동들.

백성이 배반할 때마다 하느님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것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관계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호세 11,8-9)

 

  배반하고 욕되게 하고 대못을 박아도.. 그래도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 우리를 자비의 시선과 사랑의 심장으로 바라보시면서

당신의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의 정이 북받쳐 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랑,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사랑,

바로 우리가 그 영원한 사랑의 반려자라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백하시는 거에요.

 

  우리는 그 사랑을 입었습니다.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몫은 그렇게 거저주신 사랑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것!

하느님의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강론을 갈무리하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기도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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