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611 조상들을 기억하는 위령미사(대구 월배에서)
2018-06-12 11:31:24
박윤흡

(저의 본적, 대구 월배에 가서 조상님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은 제게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미사 기간 중에 저의 고향인 이 곳 대구에 꼭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찾아오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게 남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자리하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사제가 되기까지 저희 집안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역사를 꼭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자료집 ‘옛공소의 어제와 오늘’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 안에는 ‘대구 시내의 복음전파와 옛 공소들’이라는 챕터가 있는데

‘광수골공소’와 ‘조암공소’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 광수골공소. 소재지: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345번지 달서구청 부근

 

  대구부 조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리와 광수동을 병합하여 상리라 하였다.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되었고 다시 1962년 달성군 월배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95년 대구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일리 북동쪽 끝에 있으며, 옛날에 광수가전이 있었다.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06년경 박춘재 요한의 조부 박문흠 마르티노가

이곳 광수골에 살면서 천주교에 입교하여 본집에서 그 부근의 신자들과 함께 공소 첨례를 드렸다.

그때 함께 주일 첨례를 드렸던 신자 가정은

박상태 신부의 조부인 박영덕 다미아노 가정과 천내동의 박부금 바오로 가정 등이었다.

대구본당 로베르 신부가 와서 춘추 판공성사를 주었다.

 

  조암공소. 소재지: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대광직물 앞

  얼마 후 공소를 부근인 조암의 박춘재 집으로 옮기면서 공소집을 교구청에서 사서 이전을 했다.

한편 박상태 신부의 조부인 박영덕 다미아노 가정은 그가 살고 있는 김천리에 따로 공소를 설립하여 분가했다.

조암공소 회장은 박문흠 마르티노의 아들 박인효 야고보가 맡아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때 조암 공소에는 박인효 야고보 가정, 백 마르코 가정, 허 마가리오 가정, 박동기 토마 가정 등

7세대 15명 가량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저의 고조할아버지 박문흠 마르티노, 저의 증조할아버지 박인효 야고보,

저의 할아버지 박춘봉 요한 세례자, 저의 작은 할아버지 박춘재 요한 사도, 저의 아버지 박철수 라파엘.

 

  이렇게 천주신앙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집안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제 할아버지들의 굳은 신앙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오늘 교회는 ‘사도 성 바르나바’를 기념합니다.  

1독서의 말씀은 이렇게 전합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

  ‘착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이 세 가지 타이틀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온전히 맞갖는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저는 바르나바가 ‘참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도대체 무엇을 가져가라는 말씀일까요?

아마도 그건,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나 오직 한 가지, 하느님만을 지니고 가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했던 바르나바는 그리스도 신앙인이 되어

‘하느님만을 따르면 된다.’는 일념 아래 사도로서의 소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착한 사람, 영이 머무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고

의탁과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실현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저의 조상님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이 100년이 넘도록 천주신앙의 전통과 역사를 받아올 수 있었던 것은

조부님들께서 참 하느님을 만나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특별히 제가 어렸을 적, 저를 정말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던 성모님을 닮으신 저의 할머니, 백소달 요안나를 기억합니다.

묵묵히 묵주알을 굴리셨고 온갖 궂은일을 해내시며 매일 미사를 봉헌하러 다니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할머니께서는 갑작스레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선종하셨습니다.

그때 영정사진을 들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작은 아버지 집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납니다.

임종을 코앞에 두신 할머니께서는 제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련님, 신학교 가는거 못보네..”

 

  오늘 이 미사는 제가 천주신앙을 갖도록 이끌어주신

저의 모든 조상님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는 미사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제 할아버지께서 하느님품으로 떠나신지 27년째 되는 기일입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하느님 품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 계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지금 이 미사를 정성되이 봉헌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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