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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순교자 앞에 - 이해인 수녀
오래전에 흙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이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면 강산과 하늘을
나도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임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 흘리며 부서진
당신들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오래전에 흙속에 묻힌 당신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