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항상 신부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예수님 사랑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가톨릭평화신문에 게제된 글의 내용과 오늘 신부님께서 올리신 글의 내용이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신부님께서는 불가타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amor적 사랑과 diligo적 사랑을 구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기사는 헬라어 성경을 인용하여 복음을 설명한 글인데, 일부 내용을 갈무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1239호, 2013.11.10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이 장면은 라틴어 불가타 역본이나 우리말 역본보다 헬라어 성경으로 읽는 것이 더 극적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나를 아가페 하느냐"(αγαπαs με)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이 물음에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οτι φιλω σε)고 대답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그로서는 '아가페'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아가페 하느냐"고 물으신 다음 베드로의 똑같은 대답을 듣자,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필레오 하느냐"(φιλειs με) 하셨다. 베드로에게서 "제가 주님을 필레오 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고 당부하심으로 그의 수위권을 재확인해주셨다.
즉 위 글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아가페적 사랑을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필레오적 사랑을 답했다고 요약됩니다. 물론 불가타 성경과 헬라어 성경의 차이로 인해 위와 같은 내용의 차이가 생긴 것 같은데.. 부족한 저로서는 조금 헷갈립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신부께서 정리해 주시면 안될런지요? ^^
박윤흡 (2018-05-18 15:27:22)
질문 감사합니다!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어렵게 느껴저서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 전화를 드려 조언을 청하였습니다^^;)
우선 이것도 답이 아니고, 저것도 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도 두 단어를 구분하여 강론 준비를 하였지만.. 성경 말씀이 인간의 지성 안에 국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지요!
헬라어 성경에서, 특별히 신약성경에서 '아가페'와 '필리오'는 자주 번갈아 쓰이는 단어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선 필리오를 사용하지 않아요. 요한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단어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딱히 '이렇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신약성경'에서 '아가페'가 선호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만큼은 특별하게 '필리오'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오늘 복음에 이르기 전, 복음 전체에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필리오'를 사용하십니다. 왜 요한 복음이 그러한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표현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이 '사랑하시던'을 아가페, 아가페로 사용하는데, 딱 한 번 필리오를 사용합니다. 어떤 장면이냐하면,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뛰어가는 장면.' 바로 여기에서 딱 한 번 필리오를 사용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제자에게 '신학적인, 신앙적인 임무'를 예수님께서 부여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떄문이 아닐까..
쉽게 말하면, '예수님 부활을 본 증인의 역할'로서 '필리오'를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차원으로 이해할 때, 아가페와 필리오를 사랑의 높낮이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동시에 '아가페적 역할'과 '필리오적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필리오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한 복음에서 베드로에게 '필리오'를 물으심은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심을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죠.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이것은 사도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넘겨주는 예수님의 태도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정리하자면, 오늘 복음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한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도 같죠. '늘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불러주신다는 것!
이 부분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예수님 사랑 안에서 편안한 날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김민태대건안드레아 (2018-05-18 16:02:07)
신부님! 잘 정리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리하자면 ‘아가페’와 ‘필리오’가 사랑의 정도나 사랑의 높낮이를 표현하기 보다는, '아가페적 역할'과 '필리오적 역할'의 구분이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이나 부인을 한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넘겨주시는 예수님... 베드로 사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실수하고 또 죄를 짓는 우리를 끊임없이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사랑을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