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731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하느님께 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2020-07-30 23:02:17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07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731

복음말씀 http://maria.catholic.or.kr/exGB/down.asp?type=3&menu=missa_pds1&id=179843&fileid=2

유투브 https://youtu.be/HU4KHK66nGM

 

오늘은 금요일이면서 이냐시오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창립한 인물이며,

‘영신수련’이라는 양성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이죠.

이 유명한 영신수련에는 ‘원리와 기초’라는 짤막한 글이 있는데요.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우리 주 천주를 찬미하고 공경하고 그에게 봉사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그 외에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조성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사물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면

그만큼 그것을 이용할 것이고, 또 방해가 되면 그만큼 배척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에 대해서,

만일 그것이 우리 자유에 맡겨졌고 금지되지 않았으면 중용을 지녀야 할 것이니,

즉 우리는 질병보다 건강을, 빈곤보다 부귀를,

업신여김보다 명예를, 단명보다 장수함을 원하지 않을 것이요,

따라서 모든 다른 것에서도,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을 최고목적으로 더욱더 인도하는 사물만을 원하고 선택해야 한다.

 

시간이 되시면 한 번 더 듣거나 읽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갈까요?

이냐시오 성인은 하느님을 만나 우리 각자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죠.

사실 세상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갑니다.

자신도, 자신의 자녀들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죠.

그것이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그들과 달랐던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였습니다.

무엇이 행복을 주리라 믿는가가 둘의 다른 점이었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자렛 사람들, 그들은 어느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을까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리고 의아해하죠.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http://bible.cbck.or.kr/Gospel/Contrast?seq=66

여기까지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가서 작지만 큰 차이를 보여주죠.

“그들이 믿지 않았으므로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마태오복음이 참고했을 마르코복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마르코는 일으키실 수 없었다고 말하는 반면, 마태오는 하지 않으셨다고 전합니다.

엄청나게 큰 차이죠? 사실 마르코복음이 묘사하는 예수님은 좀더 거칠고 인간적입니다.

마태오복음의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절제되어있죠.

그분께서는 이미 주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쪽이 되었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기적들만이 일어났죠.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셨든, 못하셨든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언변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힘에 치중했습니다.

정작 그분을 통해 만나야 할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에는 무관심했죠.

 

외적인 것에 집중하면 내적인 것은 놓치기 쉽습니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의 물질들은 결국 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 물질을 이용하여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나아가야하죠.

그분과의 만남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느님입니다.

그분의 출신이 어떠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보아야지 세상을 보아서는 길을 잃고 맙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바로 그것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 당신의 일을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알게 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창조된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적당한 때에 적절한 만큼씩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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