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718 연중 15주 토요일 (정의와 자비를 닮기)
2020-07-18 02:09:14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64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718

유투브 https://youtu.be/rOVOQEzhQ7U

복음말씀 http://maria.catholic.or.kr/exGB/down.asp?type=3&menu=missa_pds1&id=179677&fileid=2

 

7월 첫 주에는 남유다 출신이면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아모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북이스라엘 출신인 호세아 예언자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번 주는 같은 시기에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이사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이사야서는 66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죠. 유배 이전, 유배 중, 유배 이후입니다.

 

이번 주에 우리가 들어왔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유배 이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1이사야서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오늘 미카 예언서의 말씀을 듣게 되죠.

지금까지 들어온 ‘아모스, 호세아, 제1이사야, 미카’는 모두 유배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성경의 순서를 따른 것이아니라 실제 시간 순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한 주간의 독서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토요일에 이사야서 6장의 말씀을 먼저 들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이사야 예언자를 부르는 내용이기에 6장에 있지만, 가장 먼저 배치되어있었습니다.

이번 주 독서말씀은 본격적으로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을 다룹니다.

그의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 민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그 내용이 이어지죠.

 

월요일의 독서말씀을 잘 들어봅시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자, 그럼 이제 이 말씀들을 들어봅시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아모 5,21)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아주 비슷하죠?

연중 13주간 수요일 독서로 들었던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이것도 들어봅시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호세 8,13)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호세 10,12)

이 구절들은 연중 14주간 화요일과 수요일에 들었던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공통점이 조금보이시나요?

이 주옥같은 예언서의 말씀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그릇된 신앙생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정작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지적하는 것이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나라는 서로 다르지만, 유배를 앞둔 두 나라의 신앙생활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화요일의 독서는 당시의 정세를 알려줍니다.

북이스라엘은 넓은 땅과 강한 힘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대국 아시리아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죠.

그래서 옆나라 아람 임금과 함께 동족인 남유다와 동맹을 맺고자합니다.

아람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남유다는 거절했죠.

여기서부터 독서말씀이 시작됩니다.

아람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남유다를 침공해 들어오죠.

이사야서는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런 말씀은 전하십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들은 이 말을 믿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그 믿음을 흔들리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지막에 이런 경고를 덧붙이십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그들은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주저 앉게 됩니다.

그리고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말죠.

이사야 예언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아시리아는 좋은 명분을 얻었고 결국 북이스라엘을 침공해 멸망시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이주시키고 북이스라엘 땅에는 이민족들을 살게하여 민족의 순수성을 흩어버리고 말았죠.

하느님을 믿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수요일의 독서말씀은 그런 남유다의 잘못된 선택마저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것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를 통해 그릇된 삶을 살았던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노를 쏟아내셨다고 말이죠.

그런 당신 진노의 도구였을 뿐인 아시리아가 교만해지자 하느님께서는 그들까지 벌하십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남유다를 지키십니다.

이어지는 목요일과 금요일의 말씀도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히즈키야 임금이 병에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도 그의 운명을 말씀하셨죠.

그런 그가 자신의 의로운 삶을 기억해달라며 눈물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눈물과 진심어린 기도를 들으십니다.

먼저 그의 수명을 다시 늘려주십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그와 남유다를 구해내고 예루살렘을 보호해주겠다’하고 약속하시죠.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하도록 만드십니다.

예루살렘의 코앞까지 진군해왔던 아시리아의 대군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후퇴하는 사건이 일어나죠.

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18장에서 19장과 이사야서 36장에서 37장 사이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온전히 의지하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한 주간의 복음 말씀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자신의 판단에 하느님을 가두지 않으며 그분의 섭리를 겸손하게 믿고 살아가는 것,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의 뜻을 배워 익히며 그분의 자비로운 마음을 배워 가는 것,

이것이 한 주간 동안 우리를 향해 주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독서인 미카 예언서는 다시금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이사야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언자였음에도 이사야와는 달리

예루살렘 성전 바깥에서 전장의 참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죠.

이 재앙의 때에 완전히 망해버린 하느님의 백성을 구해내 줄 이가 없다고 소리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느님의 진심 어린 마음과

그와 나란하게 놓인 이스라엘 백성의 진심 어린 기도가 등장합니다.

마치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바람도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과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를 성실히 돌봐주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요구사항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시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그분께서는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시며, 그저 고요하게 하느님의 올바름이 승리할 때까지 당신의 사명을 실천하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우리의 바람까지 이뤄주신 것이죠.

우리는 늘 그분을 보아야합니다.

모든 말씀은 그분을 통해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조금 길어졌는데요.

길어진 김에 한가지 꼭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듣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정지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자칫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내 것을 나누는 것에는 어색해질 수 있습니다.

 

물은 흘러야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죽고 맙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갈릴래아 호수와 소금바다가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헤르몬 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조금씩이지만 요르단 강으로 계속 빠져나가 호수를 살아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소금바다, 우리가 사해라고 부르는 그곳은 다른 곳으로 물이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그저 계속 뜨거운 태양에 증발할 뿐입니다.

거기에선 어떤 생명도 살아있지 못합니다.

물은 흘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결국 병들고 맙니다.

 

삼 주간 동안 들어온 예언서의 말씀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정의로운 사람들이 되도록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맞이한 것은 유배였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우리를 다시금 가르치십니다.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물도 흐르고 은총도 흐릅니다.

흐르는 가운데 생명이 깃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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