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717 연중 15주 금요일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2020-07-17 01:06:21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15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717

유투브 https://youtu.be/syGXcYXmopU

복음말씀 http://maria.catholic.or.kr/exGB/down.asp?type=3&menu=missa_pds1&id=179676&fileid=2

 

지난 금요일에는 네 권의 복음서 중,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을

공관복음이라 부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과 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고 했었죠.

그런 차이를 통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에 모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점이 다를까요? 아래 링크를 통해서 먼저 살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http://bible.cbck.or.kr/Gospel/Contrast?seq=52

 

역시 공관복음답게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합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제자들이 이삭을 뜯기 시작하죠.

마르코복음엔 ‘먹는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마태오와 루카복음에서는 추가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바리사이들이 말합니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비슷한 의미를 지녔지요.

그 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약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빵을 먹었던 이야기이죠.

여기까지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5절에서 7절의 말씀은 마태오복음에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언급하며 당신께서 성전보다 더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시는

호세아서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 부분은 루카 복음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마태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겠죠?

 

우선 마태오는 구약의 말씀들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것은 마태오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이미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했던 것이죠.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을 통해 언급된 호세아서의 이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이 말씀은 앞서 9장 13절에도 등장했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1차적인 대상은 복음 안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입니다.

율법을 판단의 도구로 사용하여 타인을 단죄하던 사람들이죠.

2차적인 대상은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복음 속 바리사이들처럼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이 복음을 읽으면서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회개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죠.

이 이야기 안에 오늘 복음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당신께로 돌아오는 자녀들을 기쁘게 맞아들이시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그분의 다른 자녀입니다.

그분의 자비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지 않죠.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종처럼 열심히 일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랐지만,

정작 자신보다 못한 동생을 아버지께서 받아들이시자 못마땅해하며 아버지마저 등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처럼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이 자비롭지 못하다면,

하느님을 향한 충실함은 진정성을 잃고 맙니다.

그런 충실함은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사랑받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이런저런 규칙들로 단정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사랑하시고 저렇게 하면 사랑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고, 이웃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 마태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더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과 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며 억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질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가장 위험한 적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모인 우리가 서로 갈라서면 되겠습니까?

하느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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