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711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하느님을 전하는 것)
2020-07-11 00:46:44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228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711

유투브 https://youtu.be/vSu6uVqqWnU

 

찬미 예수님, 한 주간의 끝자락에 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학사님들의 강론을 들으면서 참 가슴이 따듯해지고,

제 마음과 영혼이 생기를 되찾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그것을 전하고자 하는 학사님들의 순수함이 많은 감동을 주었지요.

더 많은 분들이 들으시면 좋겠지만, 그것은 학사님들의 것이기에 제가 여기에 올릴 수는 없을 듯합니다.

월수금 삼일은 본당에서 세 분 학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강론을 하시니

기억해주시고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그 순수함과 간절함을 잘 간직하고 남은 신학교 생활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죠.

‘베네딕토 성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도회 규칙서’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수도회가 이 규칙서를 표준 모델로 하여 각자의 수도회규칙을 세우죠.

그만큼 수도생활의 초석을 세운 분이십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기도만하는 것도 아니고, 일만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와 일의 균형을 잡으라는 의미이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성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토요일이니 한 주간의 독서 말씀을 잠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 주간 동안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듣고 있죠.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앞서 보았던 아모스 예언자와 비슷하지만,

아모스 예언자가 남유다 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호세아 예언자는 북이스라엘 출신이었죠.

아모스 예언서에서는 아모스의 출신이나 직업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호세아 예언서에는 그런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아모스 예언자의 활동 시기보다 더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친아시리아파와 반아시리아파가 상대 진영의 임금들을 죽이면서 정권이 계속해서 교체되는 혼란기였죠.

 

호세아 예언서는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충실함을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느님을 외면하고 돌아서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

 

우리는 힘겨운 순간에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만나며 느끼게 됩니다.

마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느님을 체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됩니다.

풍요를 약속하는 가나안의 이방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죠.

광야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주었던 하느님을 저버리게 된 것입니다.

남유다와 갈라지면서 정신적인 뿌리를 잃게 된 북이스라엘에겐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지도 모르죠.

호세아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여인과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느님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황금 송아지 상에 경배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곤 했죠.

그렇게 계속해서 하느님을 벗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그들을 다그치고 채찍질하셨지만, 결코 내치지는 않으셨습니다.

으름장을 놓으시면서도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순히 당신을 향한 충실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스며든 사회적 불의를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저버리면서 ‘악’은 자연스럽게 그들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하느님 중심에서 벗어났기에, 자기중심적인 삶, 이기적인 삶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죠.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회는 주변을 병들게 했습니다.

호세아는 그렇게 망가져 버린 이스라엘의 회개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죠.

하느님께서는 마치 자신이 아끼는 아내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처럼 이스라엘을 염려하시고 다그치십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그분께서 부를수록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져갔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스스로 버림받은 여인이 되고 고아가 되어갔습니다.

금요일 독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은 깨닫게 되죠.

하느님만이 진정한 주님이시고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부족하고 모난 사람들이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닮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신랑이시고 아버지이시죠.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스승이며 모델입니다.

그분에게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라질 것에 기대면 결국 넘어지고 말게 됩니다.

 

호세아 예언서에 이어 오늘의 독서가 전하고 있는 이사야 예언서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주간 동안 들어왔던 마태오 복음서 10장의 파견설교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죠.

‘하느님을 전하는 것’,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이라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세상의 박해는 있을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아야한다는 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라는 말은 언제나 세상의 박해를 받게 되기 때문이죠.

세상이 그 말을 불편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제멋대로 살아갈 때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회개를 외쳤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아 멸망의 길을 걸었지만,

그렇다고 예언자들의 삶이 무의미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은 하느님께로 회개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언자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이죠.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그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세상을 당신께로 회개시키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런 그분의 부르심을 느끼며 정의와 양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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