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617 연중 11주 수요일 (엘리야와 엘리사, 사람이냐 하느님이냐)
2020-06-17 00:43:21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25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617

유튜브 https://youtu.be/36BEzeDqzRk

 

예언자 엘리야는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홀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계속된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았지요.

지난주 금요일, 우리는 그가 호렙 산에서 하느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4)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제자 엘리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우라고 하시죠.

엘리사를 부르는 이야기는 지난 토요일에 들었습니다.

열두 겨릿소를 이끌며 밭을 갈던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겉옷을 둘러주죠.

이것은 무척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당시 임금이나 예언자는 그의 권위나 능력을 상징하는 독특한 겉옷을 입었습니다.

엘리사에게 그런 겉옷을 입혀 주었다는 것은 자신의 뒤를 이를 사람으로 지목했다는 뜻이었죠.

그러니 엘리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엘리야를 따랐던 것입니다.

엘리야의 ‘겉옷’은 오늘도 등장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건널 수 있게 요르단강을 가르는 데 사용되죠.

 

 

엘리야는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를 두고 떠나려고 하지만, 엘리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길갈에서도, 베델에서도, 예리코에서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남아있어라.”하고 말하지만,

한사코 스승의 뒤를 따릅니다(2열왕 2,1-8).

엘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시고, 스승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죠?

예수님을 두고 떠난 베드로와는 달리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의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스승이 떠나는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엘리야는 자신을 충실히 따라온 제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해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엘리사는 당당하게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당돌한 제자의 모습에 뿌듯하면서도 엘리야는 자신이 들어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엘리사의 능력에 달린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최후를 보았고, 예언자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스승의 겉옷으로 요르단강을 치니 스승이 한 것처럼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지죠.

 

 

우리는 계속해서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죠.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엘리야는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죠.

그것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하느님을 향한 민족의 신앙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그의 사랑이었죠.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씁니다.

‘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

‘이 옷이, 이 말이, 이 표정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보여질까?’ 하고 말입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로지 하느님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그것에만 마음을 쓰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세 가지 덕목을 언급합니다. 기도, 자선, 단식.

이것은 각각 대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고, 자선은 이웃을 향합니다.

그리고 단식은 자기 자신의 수행을 지향하죠.

표면적으로는 셋이 가리키는 바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는 셋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행위들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언급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휩쓸릴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도 있죠.

사람에게 의지한다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단단한 땅이 아닙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집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분이시며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어계신 하느님, 그분의 마음에만 들면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일생을 다했던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잇는 엘리사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세상 안에서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분명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 것, 그것도 하나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예언자들입니다.

때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숨어계신 하느님만큼은 우리의 그 노고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다시 만나는 날, 그 모든 것을 꼭 갚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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