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613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일 (말)
2020-06-13 00:51:14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72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613

유튜브 https://youtu.be/ydHivFitl_8

 

오늘은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 기념일입니다.

성 안토니오는 우리가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도움을 청하는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죠.

성인께 도움을 청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물건을 찾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지갑을 잃어버리고 성인께 도움을 청한 뒤에 찾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라 자포자기했는데, 거실 탁자 위에 있더라고요.

 

안토니오 성인은 작은 형제회 소속 수사 신부님으로 설교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성인의 강론을 듣기 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을 정도로 말이죠.

성인의 유해 중에 혀만은 썩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고 하니,

실제로 하느님께 말씀의 은사를 받으신 것 같습니다.

 

말은 참 중요합니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죠.

꼭 필요한 말도 있지만, 필요하지 않은 말도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핑계, 변명, 남을 향한 험담, 거짓말 등은 필요하지 않은 뿐 아니라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말들이죠.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하고 말하라 하십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어제 칠죄종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보이는 율법 너머의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데,

그 내용은 죄의 뿌리가 되는 것을 일찍부터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에 한 번 휘둘리면 죄라는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 늪은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죠.

그것에는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교만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하며,

맹세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맹세가 무엇입니까?

뭔가를 걸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담보를 걸고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뭔가를 걸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그것을 상대에게 줘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뭔가를 진정으로 소유하고 있을까요?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심지어 내 몸 하나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주인만이 가능한 것이죠.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늘도 땅도 예루살렘도 심지어는 머리카락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솔직함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예,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생각이 들어있는 것이죠.

‘잘 보이고 싶다거나, 얕보이기 싫다거나.’ 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떳떳한 것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 앞에서 있지도 않은 자신의 모습을 뽐낼 필요는 없습니다.

 

독서에 등장하는 엘리사의 모습, 그는 잘나가는 부농의 아들이었습니다.

열두 마리 소가 밭을 갈 정도로 큰 땅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엘리사가 단지 엘리야가 겉옷을 입혀주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를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무엇을 알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른 것이죠.

‘아, 이 사람을 따라야겠구나.’ 이렇게 마음먹고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뒤를 따릅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못하겠다고 생각되면 ‘아니오’라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조건을 달거나 보상을 바라는 것, 그것은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안토니오 성인도 그러했습니다.

일찍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수도회에 입회했고,

서품식에 참여했다가 우연치 않게 강론 부탁을 받아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그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의 뛰어난 설교 능력은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겐 저마다의 탈렌트가 있죠.

보통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영영 모르고 살아가는가, 더 일찍 알아차리는가’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주저하고 피하고 도망가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부르심에 투신했던 엘리사와 안토니오를 따라,

주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내어맡길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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