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523 부활 6주 토요일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2020-05-22 22:58:24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223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523/14249

유튜브 https://youtu.be/Chc-f01AczA

찬미받으소서 주간 강론원문 https://blog.naver.com/cbckmedia/221956648306

 

예수님께서 지상생활을 하실 때,

그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그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보여주시고, 말씀들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이 드러났죠.

사람들은 예수님께 청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청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떠날 준비를 하십니다.

당신께서 떠나고 나면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은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청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분께서 떠나시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청할 사람이 없어지거든요.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있고,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기도가 필요하면 하느님께 청하기 위해 그들에게 찾아갔죠.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겨질 제자들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십니다.

다리가 되어주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으로 직접 아버지께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니 자신의 이름으로 청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과 연결됩니다.

이제 우리들의 기도는 바로 그분께 다다를 것입니다.

그것을 보증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고, 다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사실이

우리와 하느님의 이어짐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십시오.

그분께서 듣고 계십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아주 자세히 듣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소리뿐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까지 듣고 계십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냥 ‘하느님께서 계시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부활하시어 하늘로 오르시고’, 이런 사건의 나열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합니다.

미사는, 거룩한 성찬례는 과거사건의 재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재현입니다.

이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미사가 특별한 것입니다.

미사 안에서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은 아닌가.

살펴봐야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애정을 가지고 우리 마음의 소리까지 듣고 계십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분께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청주교구 김태원 신부님의 강론글입니다.


우리에게는 생태 교육을 포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청주교구 황간본당 김태원 신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찬미받으소서」, 219항 참조).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 일부는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피조물의 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은

우리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의 공통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태도는

‘부드러움이 넘치는 환경 보호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 태도의 바탕에는 ‘감사’와 ‘무상성’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할 수 있게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0항 참조).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0항).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지력과 능력들은 피조물을 위해서 조화롭게 사용되어야만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고,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

결국 사회와 환경에 해를 입히게 될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요청되는 덕목은 ‘건전한 겸손’과 ‘행복한 절제’입니다.

이 두 가지 덕목은 우리를 내적인 평화로 이끌어 주고,

이는 우리를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의 실현에 이바지하도록 해줄 것입니다.

이 내적 평화에는,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 계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71항)(「찬미받으소서」, 225항 참조).

 

“영적 가난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이 제시한

‘거룩한 불편심(不偏心)[치우치지 않는 마음]’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빛나는 내적 자유로 이끕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유 의지에 허락되어 있고 금지되지 않은 모든 것에서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질병보다 건강에, 가난보다 부귀에,

불명예보다 명예에, 단명보다 장수에 더 마음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 밖의 모든 것에서도 그러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6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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