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522 부활6주 금요일 (부활을 알면 바뀌는 것들)
2020-05-21 23:50:27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62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522​

유튜브 https://youtu.be/87vVckOvuJE

찬미받으소서 강론원문 https://blog.naver.com/cbckmedia/221956645070

 

찬미예수님! 강론을 준비하다보면 유달리 힘든 때가 있습니다.

어제나 그제나 비슷한 복음말씀이 등장할 때가 그렇습니다.

이번 주 내내 우리는 예수님의 고별사를 듣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이죠.

곧 떠나게 될 당신의 운명과 부활하여 다시 돌아올 것을 예고하시는 내용입니다.

곁들여서 제자들에게 보내실 진리의 영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죠.

죽음 이후에 대한 예수님의 이런 설명들은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흩어질 것을 걱정하신 것이죠.

주인을 잃으면 양떼는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십니다.

그들이 그 희망을 중심으로 서로 모여 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그분께서 묻히신 뒤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런 제자들에게 찾아갔었죠.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전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은 분명히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잘 모르지만 그냥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해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그 다음에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은 다음에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곰곰이 마음에 담아두면 나중에서야 문득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분께 물을 필요가 없게 되죠.

 

오늘 복음을 ‘고통 뒤에 낙이 온다.’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설명이 아닙니다.

고통과 죽음은 다릅니다.

죽음은 완전한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이 세상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입니다.

고통과는 다른 것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다가올 기쁨을 위한 잠깐의 진통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사라지는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면 많은 것이 변화됩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곰곰이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젠가는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부활시기,

예수님의 부활, 우리들의 부활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소장으로 계신 박상훈 신부님의 강론글입니다.


정치와 경제는 대화로써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소장 박상훈 신부

“정치와 경제는 빈곤과 [자연] 환경 훼손에 대해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상호 작용의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찬미받으소서」, 198항).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 공동의 집’을 되살려야 하는 인류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코로나19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삶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탐욕스럽게 쟁탈하며 누려온 개발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삶이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주의’가 인간 존엄과 지구 환경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찬미받으소서」의 모토는,

생태와 사회가 직면한 위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 위기라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 관료적 세계관’이 우리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폐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이 경제입니다.

주류 경제에는 타인을 염려하는 관심, 공감, 관대함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관계’로 파악하고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만남’ 속에 있는 존재로 봅니다.

단지 만족이 아니라, 통합적인 성장이라는 분명한 방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대’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깁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줌으로써”(「복음의 기쁨」, 189항)

우리는 연대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공동의 유산입니다.

그러므로 연대의 깊은 의미는 창조 세계 전체로 확장됩니다.

지구의 외침과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에 올바로 응답하는 것이

연대의 경제가 수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찬미받으소서」는 공동선과 연대에 대립하는 경제를 넘어서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제시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차원에서 ‘서로 의존’하고 ‘함께하는’ 통합의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 차원에서의 협력이 시작될 때, 「찬미받으소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거기엔 개별 국가와 지역마다 정책으로 옮겨야 하는 더 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회칙은 정치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정치의 역할에서 그 중심은 경제와의 대화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들고자 노력하기 마련인데,

정치 공동체가 그것에 들어맞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정치는 로비 단체만의 일이 아닙니다.

정치는 멀리 내다보고 작은 이들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관점으로 공동선을 실현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97-198항).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주체인 우리가 막중한 역할을 떠맡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입법에 대한 정치적 압력뿐만 아니라

각성한 유권자로서의 선택을 해야 할 책임과 권리가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06항).

 

규범은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씨름할 때 잘 파악됩니다.

위기에 직면할 때 우리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실천함으로써 공동선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 빈곤, 불평등의 시대적 위기를

권력자들의 손에만 맡겨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환의 시기는, 치유의 희망으로 고무된 고백과 회개와 정리의 시간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 회복의 시간도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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