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504 부활 4주 월요일 (성경에 등장하는 양, 목숨바치는 착한 목자)
2020-05-04 01:52:26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37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504

유튜브 https://youtu.be/vj_eOiJl3S0

 

성경에는 양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아벨도 양을 치는 목자였죠.

그의 형 카인과 함께 하느님께 제물을 바쳤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제물만을 받아주십니다.

이때 아벨이 바친 제물도 양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이었죠.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에서 이사악을 바치려고 했을 때,

하느님의 천사가 그를 막아서고 나서

아브라함이 발견한 것도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 대신 그 양을 번제물로 바쳤죠.

양에 대한 이야기는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죽음의 천사를 보내시기 전,

모세를 통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표시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셨죠.

이후에도 양은 성경 안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히 성전제사 때에 바쳐지는 제물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죠.

 

이처럼 양이 성경 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에서 흔한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고 작물이 잘 자라는 살기 좋은 땅이 아닙니다.

뚜렷한 건기와 우기, 건조한 기후와 땅으로 인해

농사로만 삶을 유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죠.

농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구약시대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찍부터 농경과 목축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건기가 지나고 우기가 시작되면 남자들은 양떼를 몰고 먼 곳으로 떠났죠.

멀리서부터 싱싱한 풀을 먹이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연히 양떼를 지킬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잠을 잘 장소를 제때 구할 수 있는 눈썰미 등이 필요했습니다.

노숙을 피할 수 없었기에 그나마 안전한 동굴이나 임시거처를 찾아야 했죠.

그런 곳을 발견하면 양떼를 몰아넣고 그 입구에서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침입자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그렇게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양떼를 돌보는 것은 여자의 몫이 되고, 남자들은 우기동안 자라난 보리를 추수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농기구가 발달하자 이제는 산악지대까지 계단식 경작지로 바뀌었습니다.

자연스레 양들을 먹일 곳은 줄어들었죠.

많은 사람들이 농업으로 돌아섰지만,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입지는 예전 같지 않았죠.

예수님 시대에 목자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세리처럼 법정에서 증인으로도 설 수 없는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쉽게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처럼 주인에게 고용된 삯꾼들이

다른 사람의 목초지에 침범하거나 새끼 양을 빼돌리는 등,

바르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구약에 자주 등장하던 양에 대한 이야기들은

신약으로 접어들면서 확연하게 줄어듭니다.

다만 양과 목자가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전해지고 있죠.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다고 하시죠. 그분은 양들을 알고 계십니다.

이 양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 어떤 도움을 주어야하는지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제 자신을 참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우리 신자분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있었는가.

한 분 한 분을 알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는가. 돌아보았습니다.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 자신을 내어놓는다고 하지만,

정말 목숨까지 내어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악의 세력에서 우리 신자분들을 지키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부끄럽습니다.

삯꾼으로 남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이런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아벨의 어린양처럼, 아브라함의 숫양처럼,

문설주에 발린 어린양의 피처럼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내십니다.

그분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그분의 죽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이 장면을 한 번 묵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양과 이리 사이에 서 있는 목자의 모습.

이리는 늑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늑대를 두고 우리를 지키고 서 계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그분께서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했던 그 사랑을

깊이 느끼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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