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200402 사순 5주 목요일 (세상 너머를 보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2020-04-01 22:43:12
김준형요한사도 조회수 157

매일미사 http://missa.cbck.or.kr/DailyMissa/20200402

유튜브 https://youtu.be/y1kmdsQ3HF

 

찬미예수님~ 아니 글쎄, 어제가 만우절이었네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주 조용한 하루를 보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학창시절에만 해도 만우절은 무료한 삶의 활력소 같은 날이었습니다.

자리도 바꿔 앉고 심지어는 교실을 바꾸는 친구들도 있었죠.

대학 때는 휴강이 되었으니 집에 가도 된다고 주변 친구들을 선동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왠지 이 날 만큼은 왠만한 거짓말 한두 개는 웃어넘길 수 있도록 허락된 날이었으니까요.

그런 날을 이렇게 쉽게 떠나보냈다니 조금 서운하기도 하네요.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이죠.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기에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말의 뜻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이거든요.

이 장면만 딱 떼어놓고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 잘해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해주고, 그들 중에는 임금도 있을 것이며,

자자손손 그의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들의 후원자로 그들 모두를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시죠.

그리고 나그네살이 하고 있는 이 가나안 땅 전체도

아브라함과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요. 이 말씀의 앞뒤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약간, 아니 조금 많이 서운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이 장면이 놓여있는 자리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봤을 때 이 말씀을 하셨다면 분명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까지 영원히 지켜주시겠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고,

수많은 위기를 겪어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 있었던 일이죠.

하느님께서는 몇 번이나 비슷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세 12,2)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창세 13,15)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창세 15,4)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수차례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약속대로 그의 재산은 늘어 갔지만, 후손은 영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었죠.

결국 아브라함은 여종 하가르에게서 아들을 보았습니다.

이게 얼마나 서운한 일인가요?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서 후손을 얻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또다시 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젠 사라에게서 아들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믿기엔 이미 지쳐버렸을 아브라함이지만, 그는 믿기 힘든 이 약속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끝까지 그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도 웃고, 사라도 웃었지만,

그는 분명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느님과 계약을 맺지 않았겠죠.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언급하시며,

그가 당신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아들 이사악을 가졌고, 그에게서 야곱과 에사우가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자손은 길이 이어지며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후손을 보게 되었죠.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죠. 하느님께 죽음이 있을까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죽음이란 것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십니다(마태 22,32).

그분께는 모두가 살아있는 존재들입니다.

유다인들은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느님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까?

유다인들의 시선은 바로 이 세상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리고,

되지 않는 거짓말로 들린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독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그도

하느님께서 온 세상을 초월해 계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그분께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렇기에 그분의 말씀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성주간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잡한 이 세상에서 잠시 눈을 들어 저 너머에 계신 하느님을,

그분의 계획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방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분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그분과 맺은 우리의 계약, 그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께 믿음을 두며

이 시간을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미사는 생미사로 김상남 헨리코 가정,

연미사로 전창희 젬마, 송미경 모니카, 이상순 안젤라를 기억하며 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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