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체험기

성지순례체험기 명동주교좌 성당(서울교구)
2017-06-21 22:19:33
범계성당

명동 주교좌성당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

오늘은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다. 그래서 10월 18일 세례자들이 대부모와 교리교사들과 함께 서울 성지 순례를 가게 되었다. 나도 그날 대녀가 생겨서 함께 가기로 하였다. 오틸리아! 참 마음이 곱고 온순한 선생님이다. 2월 말에 입교하여 꾸준하게 교리 공부하고 있다. 서울에 소재한 명동 주교좌 성당, 당고개 성지, 새남터 성지, 절두산 성지 등을 돌아보기로 했다.

순례객들은 버스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아침 8시 30분경에 성당에서 주임 신부님의 강복을 받은 후 출발하여 9시 30분쯤 명동성당에 도착하였다. 10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 성당 마당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분들이 미사에 참례하고자 들어왔다. 오늘의 말씀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 23-25) 신부님은 강론을 통하여 신앙인이 알아야 할 자기이해 두 가지를 말씀을 하셨다. ‘하나는 나는 죄인이며 나약한 인간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주님을 구원자로 인정하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구원을 체험하며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존재로 인간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나를 죽음에서 부활의 삶으로 이끌어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아는 것이다. 그때에 세상을 초월하여 영원한 것에 희망을 두고 사랑의 삶을 살게 된다. 어느 한 쪽에만 무게를 둘 때 하느님을 심판자, 벌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게 되고 또는 교만하거나 나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구원에서 멀어지게 된다. 순교 성인성녀들은 이 두 가지를 이해하였던 분들이다. 고난을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우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교의 힘을 얻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살았던 분들이다. 우리도 성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한다. 순교는 삶이다.’ 미사 후에는 지하 묘소를 참배하고 안내자들로부터 명동성당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순례객들은 성당 뒷마당의 성모무염시대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서울 대교구 명동 주교좌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교회 신앙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고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성당 설계와 공사의 지휘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으며 1898년 5월 성령 강림 대축일에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하면서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때 믿음을 지킨 순교자의 유해를 받아 지하 성당에 모셨다. 현재 지하 묘역은 성 앵베르 범 주교와 성 샤스탕 정 신부, 성 모방 나 신부의 유해 일부 및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등 다섯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으며, 푸르티에 신부 및 프티니콜라 신부의 유해와 기해박해의 무명 순교자 두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당 제대 뒤 쪽에는 성 베드로 바오로 바르나바를 비롯한 사도들의 성화가 있고 스테인글라스는 묵주의 기도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가 새겨져 있다. 그 당시에는 벽돌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없어서 중국에서 기술자들이 와서 벽돌을 구웠고 왜고개 성지 흙을 이용하였는데 왜고개 성지는 순교자들의 생매장 터였기에 순교자들의 성혈이 벽돌에 어려있다고 한다. 참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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