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신앙생활)

궁금해요? (신앙생활) 왜 삼종기도는 서서 바치죠?
2017-07-24 10:07:45
범계성당 조회수 1070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성모신심을 가진 열심한 단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직, 수도 성소자도 적잖이 배출되었습니다.

가정을 이뤄 살아가는 친구들 중에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뤄 살면서 성당 공동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친구들 중 저와 친했던 한 명이 아주 사소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삼종기도(Angelus)는 왜 서서 하는 거야?"

 

우리는 보통 당연히 서서 한다고 여길 만한 것인데, 막상 질문 앞에 서니 그 기도를 꼭 서서 해야 하는가? 하는 반문이 생기더군요.

일상에 습관적으로 젖은 태도에 대해 종종 어떤 질문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해 주곤 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타성에 젖어 있는 것들에 대해 태도를 올바르게 가지도록 이끌어 주는 유용한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삼종기도는 당연히 서서 한다고 생각하였던 까닭은 흔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아침미사에 가면 삼종기도가 보통 미사 직전에 바쳐지는 까닭에 신자들은 당연히 서 있습니다.

점심에 하는 삼종기도도 길을 지나가다가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잠시 가던 길 멈춰 서서 바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명동성

당 앞을 지나가다 보면 정오에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저녁에 바칠 때도 아침미사와 동일한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따져 보면 그 기도롤 꼭 서서 바치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앉아서 바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답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속풀이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거의 자동적으로 프랑스의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의 '만종'이라는 그림을 떠

올렸습니다.

그 그림의 원제는 안젤루스, 그러니까 '삼종기도'입니다.

그림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석양을 배경으로 경건히 '서서' 기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 '만종', 장 프랑수아 밀레.(1859)

 

'그래, 삼종기도는 밀레의 그림처럼 서서 하는 것이 전통이라 서서 바치는 것이야'라는 제 생각을 공동체의 선배 신부님께 이야기했더

니, 장난기 많은 이 분은 "그건 밭에 앉는 것이 불편해서 그랬던 거야"라고 응대하시더군요.

오! 나름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제 나름대로 그렇게 답을 구해 보고는 사전을 참고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평상시의 "삼종기도는 꿇어서 바치는데 주일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뜻에서 일어서서 바친다". 그리고 "부활 삼종기도는 또한 기쁨을 표

현한다는 의미에서 항상 일어서서 바친다"(가톨릭대사전 참조)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삼종기도는 두 가지가 있지요.

부활시기가 아닌 평상시에 바치는 삼종기도와 부활시기에 바치는 부활 삼종기도 말입니다.

그 두 가지 삼종기도를 바치는 자세는 이렇게 따져 보니, '앉고 서는' 자세의 구분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서고'의 구분과 관련이 있었네

요.

삼종기도를 주일에만 서서 바치는 이유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부활의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 곧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시기의 삼종기도는 항상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기에 늘 서서 바친다는 것이 일관성 있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어느날 새벽미사에 갔던 제 친구는 앉아서 삼종기도를 바쳤다고 하는데, 이 자세는 꿇지도 서지도 않은 제3의 자세였던 것입니

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다면 누워서 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삼종기도를 하루 동안, 아침 정오 저녁 정해진 때에 바치냐 아니냐가 더

따져 봐야 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자투리 시간이라 할 짧은 시간을 활용해서 바칠 수 있는 이런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

도록 해 줍니다.

우리의 일상을 경건하게 이끌어 주는 전통있는 신심행위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함으로써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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