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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독후감> 존 우(John Woo, 우징숑), '내심낙원'을 읽고.
2018-02-08 22:11:53
박윤흡 (missa00) 조회수 1091

  '내심 낙원'을 읽고.

(마음 속 고요한 하느님 나라)

 

 

박윤흡 윤일요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어린 시절, 이 그리스도 신앙 진리를 듣고선 자문하게 되었다.

‘왜 우리 동양 문화는 그리스도 신앙을 늦게 받아들인 것일까?’

신학교에서 '신학 토착화 수업'을 들었을 때,

동양과 서양의 신앙,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토마스 머튼 신부님’께서도

당신 인생의 말년을 이 연구에 쏟아 부었는데 그 영향도 있는 듯하다.

 

  일전에 머튼 신부님께서 개인적 친분으로

영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맺어온 존 우(우징숑)의 ‘동서의 피안’을 읽었다.

 

“하느님께서는 동양과 서양을 초월해 계시면서

동시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분이시다.”

 

 

  위의 존 우의 통찰이 내 마음에 깊게 자리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오셨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종교와 문화, 인종과 계층에 상관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무상증여로 받는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동시에 그리스도교 뿌리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 동양에도

충분히 깊은 뿌리가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존 우의 사상과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된 듯 하다.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오랜 시간 읽혀져 온 영성의 고전,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 신비사상의 만남을 다룬 존 우의 ’내심낙원‘이다.

 

 

  내심낙원, 말 그대로 ‘마음의 정원’이라는 말이다.

존 우의 저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선 존 우의 인간 이해,

동양철학과 그리스도 신앙의 조화를 이룬 사상의 독창성과 그 배경을 다룰 것이다.

나아가 존 우와의 대화를 통해 얻어낸 나만의 결실을 적으며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존 우는 우선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중고등부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검사, 변호사, 판사 등으로 대답을 한다.

아프리카 BJ라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여럿 만난 적이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흔히 사회적인 위치가 높다고 말하는, 소위 우리가 추구하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이 삶을 형성해가는 과정일 수 있겠지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존 우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우리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는가 하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회적이며 피상적인 자아도 ‘나’를 형성하는 자아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참된 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참 자아이며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태초에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가?

 

  존 우에 따르면,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태어났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내면에는 이미 거룩함의 씨앗이 들어있기에

충분히 거룩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렇게 불리움 받고 있다는 것이 존 우의 인간에 대한 이해다.

 

  이런 존 우의 생각을 받아들이며,

우리들의 양심을 통해 거룩함으로 불러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기억난다.

또한 그 양심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써

나의 이성과 기억, 의지와 감성을 통해 더욱 더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당겨주시는 그분의 '목마른 이끄심'을 체험할 때도 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사랑을 배척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나 또한 그런 존재임에 분명하다.

사랑을 갈망하고 바라는 그 마음. 사랑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강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얼만큼 사랑을 실천하는가?

성성(Sanctitas)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은

사랑 실천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사랑의 자발적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묵상하며 나 자신을 성찰해 본다.

 

 

  이런 사랑의 씨앗이 발아되는 것은, 인고와 역경의 순간들이 수반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늘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 갈망과 동시에 한켠에는 '나만.. 나만..' 이라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기중심적인 나 자신과의 내적인 투쟁을 통해

씨앗을 발아시키는 자유의지적인 노력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요청된다.

 

  존 우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성성은 진화이며 성장, 육성이라고 믿었다.

그는 그 사상을 천국으로 향하는 항해라고 명명하고

그 여정을 세 가지 길로 묘사한다.

첫째 길은 세정하고 극기하며 묵상하는 정화의 길,

둘째 길은 성령의 은사가 사랑과 정의의 순수한 행위를 우리에게 고취시키는 조명의 길,

셋째 길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완전한 관상의 순간을 의미하는 일치의 길이다.

정화와 조명 그리고 일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신학교의 기숙사 이름은 학년 차등에 따라 '정화관', '조명관', '일치관'으로 나뉜다.

하지만 지난날의 성찰은 나 자신이 나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역설한다.

어쩌면 그 모든 과정들은 내 삶의 역사에서,

심지어 하루의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이리라.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늘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수품을 받고서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들과 마주하며

마음이 가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왜 현실의 유혹들 앞에선 무너지는 것일까?

전보다 더더욱 마음이 가난해 질 수 있는 은총의 풍성함을 체험함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만 하느님보다는 나 자신을 중심으로 삶을 채워가려고 하는 것일까?

 

 

  이런 나약한 존재인 나를 하느님께서는 부르신다.

 

“나를 따라라!”

 

존 우가 설파하는 내심낙원은 바로 이 부르심에

가난한 마음으로 응답하는 그것이 아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열 때

내 삶 안에서 낙원은 회복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 내게 주시려는 선물이 아닐까 묵상해 본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 가졌던 순수한 마음.

당신의 성혈로 나의 얼룩을 지워주시고

순수함으로 더욱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하며 본고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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