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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엔도 슈사쿠의 침묵 독후감
2017-10-31 13:14:54
김정태 (raymond) 조회수 1316

<침묵> 독후감

※ 저자 소개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에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간의 사이가 나쁘다가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 엔도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이모 집에서 살게 되며 가톨릭 신자였던 이모의 영향으로 1935년 일가족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949년에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엔도 슈사쿠(1923~1996)는 생의 후반기에 ‘외로운 너구리의 암자’라는 뜻의 필명 ‘고리안’[孤狸庵]으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소설을 발표했으며, TV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으로 일본인에게는 유모어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나 사후에는 종교문학과 정통 문학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자 그의 문학의 정점인 <침묵>의 작가이며 사회비판적인 소설가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엔도 슈사쿠는 태평양전쟁이 적의 종교를 믿는다고 비난 받아야 했으며 그와 가까웠던 외국인 뮈랑 신부도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고 이를 본 그는 자기의 고해성사가 영원히 비밀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말년에 저술한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단체관광객의 이야기를 다룬 <깊은 강>(1993)에서, 다른 종교인인 힌두교도까지 구원하고자 하는 초자연적 사랑 즉 가톨릭을 넘어, 우주 전체를 신의 사랑으로 감싸 보려는 종교다원주의의 세계관을 보여 준다.

 

큐슈의 <침묵> 기념비에는 “인간이 너무 슬픈데, 주여, 바다는 저토록 푸릅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

소설 <침묵>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시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시대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정점에 올랐던 17세기이다.

 

1549년 8월 15일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한 때부터 메이지(明治) 정부가 기독교 선교 금지를 폐지한 1873년까지 320년간 중 1614년에 에도막부(江戶幕府)가 금교령(禁敎令)을 선포한 이후 259년간은 가장 혹독한 박해 시대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원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적극 보호했으며, 이때 기독교 신자는 급속히 증가하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영세를 주느라 팔이 아팠다고 과장되게 기록할 정도였다. 그 후 집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나가사키, 교토, 사카이의 상인들이 외국과 무역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교사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큐슈 정벌 때 신자들이 영주 말을 듣지 않고, 또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인을 노예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모든 선교사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와중에 1596년 스페인의 무역선 산 펠리페 호가 해안가에 좌초된 사건이 터지고 도요토미는 법에 따라 좌초한 배의 모든 물자를 압수할 것을 명령했으나 선장이 항거하자 도요토미는 이듬 해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 등 26명을 나가사키에서 처형하는 ‘26인 성인 사건’을 일으킨다.

 

다음으로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1614년에 기독교 선교 금교령을 선포한다. 당시 신자 수는 37만 명에 달하였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은 관광지가 된 운젠(雲仙) 유황물의 고문을 받아 죽었다. 발가벗기고 칼로 베인 상처에 뜨거운 유황 물을 붓고, 돌을 달아 뜨거운 온천 아래 가라앉혀 죽이기도 했다. 당연히 저항도 뒤따랐으며, 1637년 일어난 ‘시마바라의 난’은 대표적인 농민 봉기였다. 시마바라성 축성에 동원된 농민들은 극심한 노역과 무거운 세금, 수년 째 계속된 흉작을 견딜 수 없어 ‘하느님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던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의 지휘에 따라 십자가를 앞세우고 투쟁하였으나 전원 몰사한다.

 

탄압 시대는 1649년부터 메이지 정부가 기독교 금지를 폐지하여 외면적으로는 끝났으나, 일본인에게는 반기독교에 대한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어 <침묵>의 무대였던 400여 년 전의 상황과 지금 일본인의 신관이나 사상에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어떤 특수성이 있다.

 

※줄거리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라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보고서가 로마 바티칸에 들어왔다는 음산한 소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교로서 사제와 신도를 통솔해 온 존경받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며 믿기 어려운 소식이다. 이를 믿을 수 없었던 그의 제자 로드리고 신부와 다른 두 명의 포르투칼 사제는 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자원하여 일본으로 떠난다.

1638년 3월 25일, 드디어 세 사람의 포르투칼 사제들은 축복을 받으며 인도 함대, ‘산타 이사벨’호에 승선하여 여러 항구를 거쳐 인도의 고야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다.

 

마카오에 도착한 그들은 일본에서 3만 5천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무서운 박해 속에서 학살을 당하였으므로 마카오 선교회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들을 일본에 보내는 것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비록 일본의 선교 상황이 최악이라 해도 박해가운데 있는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가련한 운명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결국 마카오에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간다. 여행 중 몸이 약했던 마르타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장면은 우리의 신앙 초기에 마카오로 간 신학생 3명 중 최방제가 병사한 일을 연상케 한다.

 

일본에 도착한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박해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입교했던 사람들이 박해에 직면하여 얼마는 불신자의 생활로 돌아가지만 신앙을 지키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무수히 죽어간다. 로드리고와 가르페가 묵고 있던 마을의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바다에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려 수장으로 죽어간 뒤를 이어 동료 가르페 신부마저 순교한다. 이런 모습에 로드리고는 고뇌하며 절규한다. 무엇보다 그는 이 무섭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침묵만 지키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느님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하느님이 안 계신다면 선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노력한 자신의 반생은 물론 영웅적으로 죽어간 신도들도 모두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또 순교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두려워하는 자 등 두 부류가 있는데 전자가 평가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후자라고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순교하지 않았다고 하여 하느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는지? 신부에게 있어 명예롭게 순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신앙의 불모지에서 교회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하여 계속 살아서 선교사명을 완수해야 하는지? 성화상을 밟음으로써 처참하게 죽어가는 신자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명예로운 순교를 택해야 하는지?

소설 <침묵>에서 특이한 인물은 기치지로이다. 그는 마카오에서부터 로드리고를 동반하여 일본으로 잠입한 일본인으로 볼품없이 나약하며 경멸스러우며 교활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는 성화를 밟고 배교한 뒤에 신도들을 고발하고 마침내 로드리고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큰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로드리고를 따라 다니며 마침내 로드리고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엔도 슈사쿠는 이 인물을 가리켜 “나 자신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로드리고는 기치지로를 경멸하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이 찔리는 것을 느낀다. 그도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며 하느님께 따진다. 그리고 자기도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으면 평범한 신앙인으로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로드리고 신부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주 그리스도는 누더기처럼 더러운 인간들을 찾아 구하셨다.”고. 그때 그리스도의 맑고 다정한 눈이 조용히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으며 신부는 기치지로를 경멸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나약한 신앙인이며 배신자이기도 한 가치지로를 보면서 가리옷 사람 유다는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인지? 그리고 자기를 배신하고 배교한 가치지로에게 고백성사를 주어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뇌한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유다까지 용서하신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자신을 팔아넘긴 배신자 가치지로를 용서하고 그에게 고백성사를 준다. 한밤의 옥사에서 페레이라 신부가 세긴 ‘LAUDATE EUM’(주님을 찬미하라.)이라고 쓰인 벽에 얼굴을 대며 주님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할 때 침묵 속에 다정하게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침묵에 대한 그분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대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도 곁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끝까지 나는 그대 곁에 있겠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배교했을 것이라는 페레이라 신부의 말에 따라 이미 많은 사람이 밟아 움푹 파인 발아래 놓인 성화를 내려다보며 고뇌할 때 이미 많은 사람이 밟아 움푹 파인 성화속의 예수님은 “고통스럽게 신부를 쳐다보며 호소하고 있었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괜찮다. 너희들에게 짓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신다. 신부가 성화를 밟았을 때 저자는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라고 표현하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음에도 용서를 받은 베드로처럼 로드리고도 용서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묵상

우리나라 보다 먼저 신앙이 전파된 일본에서의 박해 상황을 읽으며 구멍 매달기고문, 바다의 말뚝에 매달아 수장 시키는 방법 등 우리나라보다 더 참혹하게 신앙을 증거한 일본의 순교자들을 생각해 본다. 일반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신앙세계에 있어서도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을 것인데 나는 어떤 부류의 신앙인인지 자숙해 보며, 배교자를 깊은 생각 없이 평가 절하하는 것이 옳은지 묵상하게 한다.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신자를 뽑아 사제 역할을 맡긴 일본의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보며, 우리 신앙초기의 가성직제도를 연상케 하고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성화상을 밟는 모습에서, 반대의 경우이지만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순교의 길을 스스로 택한 주문모 신부님을 묵상하게 된다. 주문모 신부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순교하였지만 로드리고 신부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배교하였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님의 침묵이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주님께서는 침묵만 고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십자가를 같이 나누어 지셨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욥기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침묵을 볼 수 있으며, 하느님은 침묵으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욥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결국 성경에서의 하느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온전한 것을 허락하기 위한 축복을 완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치는 말

기독교는 침묵의 역사다. 자기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갈 때에도 절대자는 침묵하셨다. 역설적으로 그 침묵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순교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바로 그 결단에 의해 하느님 나라는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로드리고는 신앙의 악조건 속에서 더욱 길게 지루하고 모진 나날을 정신적 고문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운 없는 순교자’가 아닐까? 저기에 가족이 있고 자유가 있는데, 여기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그의 삶은 순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드리고의 마지막 고백에는 순교자 못지않은 무거운 신앙고백이 실려 있다.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이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기치지로를 통하여 우리는 신앙인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자라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망가지고 경멸받아 마땅한 어그러진 인격의 소유자일지라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갈 때 마침내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태양의 존재를 믿는다. 혼자일 때도 나는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하느님이 침묵하실 때도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다.”

- 1945년 독일 쾰른의 지하실 벽에서 발견된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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